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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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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금산사(20060802) 김제에 유명한 사찰 금산사를 찾았다. 한국관광공사에서는 금산사를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모악산 도립공원 입구에 우뚝 서 있는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되고, 776년에 진표율사가 고쳐 지어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경내에는 국보 제62호로 지정된 미륵전을 비롯하여 지정문화재 10여점이 있으며, 그외에도 부속건물이 많아 호남제일의 고찰로 손꼽힌다. 또 금산사는 역사적인 사건이 많았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후삼국시대 견훤이 아들 신검의 반란으로 구금되었던 곳이 바로 이 금산사라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금산사에서 승병을 양성하였다고 한다.일주문을 지나 숲길을 오르니 계곡이 시원하다. 홍예의 모양으로 해탈교가 놓여 있고 그 앞 영지와도 같은 작은 연못에 비단잉어들이 한가로히 유영을 ..
청하산청운사(20060802) 하소백련지로 유명한 청운사는 김제의 청하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청운사는 조선말엽 고승 한분이 충청도 계룡산에서 바라보니 서광이 비치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김제 평야의 모서리에 있는 청하면 대청리에 있는 이곳 청하산이었다고 합니다. 이 고승은 여기에다 사찰을 짓고 불제자가 되어 중생들을 극락에 인도하기로 마음먹고 청운사를 건립, 인력극한의 섭생으로 시련을 극복하여 불자(佛子)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청평사 2(20060724) 회전문을 지나니 정면에 대웅전이 왼편에 관음전, 오른편에 나한전이 사각형의 구도로 자리하였고 대웅전을 마주하여 회전문 사이에 회랑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위에 극락보전이 작은 전각과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보호수를 위해 세운 난간에 돌탑이 가득합니다. 돌아나오려니 모두가 예사롭게 보이지를 않습니다. 작은 개울에 놓여진 다리가 앙증맞기도 하였습니다. 요사채에 굴뚝이 오래된 가문비나무의 높이와 비슷하였습니다. 스님도 한가한 모양입니다. 사찰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려는 학생이 바쁘게 이것저것을 물었지만 아는 게 없어 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흐린 날씨이기에 더욱 고적한 청평사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청평사 1(20060724) 청평사계곡을 한참 오르다 선동교를 지나니 청평사입니다. 오봉산 기슭에 포근히 안겨있는 모습이 너무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청평사에 대한 소개는 한국관광공사의 안내로 대신합니다.고려 광종(973년)때 영현선사가 처음 세웠다. 고려 선종 6년(1089) 과거에 급제했던 이자현은 관직을 버리고 이곳 청평산에 들어와 선(禪)을 즐기며 은둔했다. 그는 청평사 주변에 자연경관을 살린 대규모의 정원을 가꾸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사각형 모양이 되도록 사다리꼴로 석축을 쌓고 계곡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고, 연못에 오봉산이 비치도록 했다. 조선 명종 때 보우선사가 중창 복원하였다. 청평사는 높이 9m 에 아홉가지의 소리를 낸다는 구성폭포와 유리알처럼 맑은 물과 주위의 경관이 빼어난 청평사계곡을 끼고 있다. 계곡의 중간에..
대둔산 태고사(20060708) 대둔산 정상인 마천대를 올랐다가 낙조대와 태고사 쪽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함께 간 사람이 반대를 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침에 오른 길을 다시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그냥 오려니 다시 올 수 있기가 쉽지를 않을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늦었지만 태고사를 향했습니다. 태고사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대둔산 낙조대(大屯山 落照臺) 아래에 있는 사찰입니다.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하였고 고려시대 태고화상(太古和尙)이 중창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진묵대사가 재건하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오르는 길은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었더군요. 이 절에서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선생이 수학하였다고 전해지며, 절 입구의 바위에 ‘석문(石門)’이라는 우암의 필적이 움푹 들어가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비가 온다고..
속리산 법주사 2(20060618) 대웅보전과 팔상전 사이에전각이 있고 전각 속에 석등이 모셔져 있었습니다.국보 5호인 쌍사자 석등입니다. 쌍사자 석등(국보 5호)은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중의 하나로 그 조성년대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등의 간주석을 석사자로 대치한 이 석등은 전형양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8각의 지대석 위에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대 방석을 모두 하나의 돌에 조각한 것으로 다른 석등에 비해 화사석과 옥개석이 큰 것이 특징이다. 쌍사자 석등과 나란히석등이 또 있었습니다.사천왕 석등이라 하였습니다. 사천왕 석등(보물 15호)은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석등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조각수법으로 보아 혜공왕(765-780재위)대에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중창하던 때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하나의 국보인 석연지..
속리산 법주사 1(20060618) 호서제일가람이라는 법주사를 속리산에서 내려와 둘러보았습니다. 찾은 시간이 석양의 법주사를 보게 하였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법주사를 다음과 같이 소개를 하고 있었습니다.속리산에 있는 법주사는 1400년전 신라에 불교가 들어온 지 24년째인 진흥왕 14년 (서기 553년)에 의신조사가 세웠다. 경내에는 우리나라 3대 불상전 가운데 하나인 대웅보전(大雄寶殿)을 중심으로 용화전, 원통보전, 명부전, 능인전, 조사각, 진영각, 삼성각 등 8개의 전각과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종고루, 부도전 등 5개의 부속건축물, 그리고 선원, 강원, 염불원 등 3개의 원과 또한 염화당, 용화당, 미룡당, 응주전, 사리각, 종무소를 포함한 10여 채의 요사채들이 남아 있어 도합 30여동의 건물이 조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
소백산 비로사(20060606) 소백산 비로봉에서 당간지주가 잘 보존된 비로사로 하산을 하였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비로사는 다음과 같이 소개를 하였습니다.비로사(毘盧寺)는 소백산 비로봉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산사이다. 680년(문무왕20)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신라 고찰로서 불상, 당간지주 등의 유물이 남아 있어 이 절의 깊은 내력을 말해주고 있다. 맨 먼저 비로사 입구 좌측 위에는 영주삼가등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다. 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4.8m높이에 서로 마주보고 서있다. 양 지주의 내측면은 평평하고, 전 후면에는 가장자리와 중심부를 따라 띠가 조각되어 있다. 또, 간을 받치는 간대석과 간을 삽입하는 구멍이 있어 전체적으로 치밀한 구조를 보여준다. 이름처럼 고요한 적광전 앞에 돌탑이 친근하기만 합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