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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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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가산내소사 2(20051127) 내소사 소개와 함께 내소사의 다른 모습들을계속해야겠다.내소사 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서 북쪽으로 1.2km 정도의 거리에 있는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창건 되었다고 전한다. 혜구(惠丘)두타 스님이 이 곳에 절을 세워 큰 절을 '대소래사', 작은 절을 '소소래사'라고 하였는데 그 중 대소래사는 불타 없어지고 지금의 내소사는 소소래사이다. 보유한 문화재로는 국가 지정문화재 4점과 지방 유형문화재 2점이 있다. 또한 잘 보존된 봉래루 화장실 등 옛 건축물과 근래에 신축한 무설당, 진화사, 범종각, 보종각, 선원, 회승당 등의 건축물이 도량에 조화롭게 잘 자리잡고 있다.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조선시대 때 건립된 것으로 전면에 꽃살무늬를 조각한 문짝을 달았는데 이들은 모두 정교한 공..
능가산내소사 1(20051127) 입구에서 일주문이 반갑다. 능가산내소사(楞伽山來蘇寺) 옆에서 누군가가 '석가산내소사라..............' 하마터면 나도 석가산이라고 읽을 뻔했다. 일주문을 지나면 하늘로 쭉쭉 뻗은 전나무가 반겨주었다. 전너무 향이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전나무 숲길이 다리에서 끝이 났다. 돌아보니 전나무와 어울려 11월말인데도 아직 물들어 있는 단풍이 아름답다. 다리를 건너 고목과도 같은 벚나무가 천왕문까지 길 양옆으로 시립하여 반긴다. 봄이면 벚꽃이 지천일 것 같다. 천왕문을 지나면 봉래루가 맞이하고 봉래루의 누각밑으로 들어서면 수령이 천년이상으로 추정되는 보호수가 법당들을 아우르며 절을 지켜주고 있다. 대웅보전은 단청을 하지 않아 자연스러운 고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으며 꽃살 무늬를 조각한 문짝은 ..
밀양의 천황산표충사(20051120) 재약산과 천황산을 돌아서 내려오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절에서 바라본 천황산은 지는 햇살을 받아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다. 아침에 표충사의 오른쪽 옥류동천으로 올랐다가 저녁에 금강계곡으로 내려오니 표충사 뒤의 산을 다 돌아내려온 것이었다. 지금 표충사는 등축제로 온통 등천지이다. 웰컴투푸껫의 홈피에 표충사에 대한 안내가 참 좋다. 천황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표충사는 사명대사가 기거한 곳이기도 하다. 사적기에 의하면 표충사는 원래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삼국통일을 기원하고자 명산을 찾던 중 이곳 산정에 올라 남쪽 계곡에 서리는 오색상운(五色祥雲)을 보고 터 를 잡아 산문을 열고 죽림사(竹林寺)라 하였다 한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선사가 불법을 일으키기도 한 천년고찰. 그러나 훗날 임진왜란때 ..
월출산 무위사(20051113) 월출산에서 내려오니 2시였다. 월출산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오는 길에 무위사를 들렸다. 이따금 맞아주는 갈대가 반가웠고 가을추수가 끝난 들에 햇살이 따스하였다. 자그마한 주차장에 7-8대의 차가 이리저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차장이 잘 정리되었는데 주차비를 받지 않았고 입장료도 없었다. 관광지를 가면 으례히 받는 주차비와 입장료를 받지 않으니 횡재를 한 기분이다.한국관광공사에서 무위사를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무위사는 강진읍에서 북서쪽으로 16km 쯤에 자리한다. 이 절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년(617년)에 원효대사가 이곳 월출산 남쪽 기슭에 창건하여 관음사라 했다가 1555년 태감선사가 지금의 이름인 "무위사"로 불렀다고 전한다. 극락보전을 제외하고는, 그당시 지어졌던 대부분의 건축물들..
월정사의 선 음악회(20051002) 오대산 비로봉을 오르니 정상 부근에는 제법 단풍이 들었다. 월정사까지 돌아보려면 서둘러야겠기에 아쉬웠지만 발길을 돌렸다. 적멸보궁과 상원사를 돌아보고 나니 저녁 어스름이 산을 감싼다.올라올 때 사람들이 너무 붐벼 차도 월정사에서 상원사 오는 중간에 세워두어서 또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월정사에 도착하니 6시가 훌쩍 넘었고 전나무 숲길은 어둠에 쌓여있었다. 어두워도 어떠랴. 여기가 그 전나무 숲길인데................................ 심호흡을 하면서 걸었다. 폐 깊숙하게 들어오는 청량한 기운에 온몸을 맡겼다. 약간은 어두워서 지나는 분들에게 신경이 쓰여지지 않아서 더 좋다. 전나무 숲길을 끝까지 걸었다가 올라와서 대웅전을 찾았다.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월정사 팔..
오대산 적멸보궁과 상원사(20051002)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전각을 말한다. 그중에서 신라의 승려 자장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양산 통도사, 강원도 오대산 중대의 월정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이 그것이다.오대산의 비로봉에서 내려오면 오대산 중대의 적멸보궁이 있다. 비로봉을 뒤로 하고 무수한 산들을 아우르면 자리한 오대산중대의 적멸보궁에는 오대산을 찾는 등산객보다는 적멸보궁만을 위해 찾아오시는 분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적멸보궁의 진신사리를 보신 앞에 참배를 하시는 분과 전각 앞에 달린 수많은 등이 그를 증명하는 것 같다. 상원사에 내려오니 벌써 가을 해가 서산에 걸린다. 세조와 문수동자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오는 상원사..
기장의 해동용궁사(20050827) 기장에 있는 해동용궁사를 갔다. 한 가지 소원을 꼭 이루어준다는 소문을 들어서가 아니고 어느 불로그에서 헤동용궁사를 보았는데 부산을 가면 가보리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우리나라의 대부분 사찰이 산중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해동용궁사는 해안 암석 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 좋은 풍광과 많은 사람들때문인지는 몰라도 절이라기보다는 관광지라는 느낌을 받았다. 용궁사에 대한 안내는 네이버의 백과사전을 참고하였다.고려시대 1376년(우왕 2)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창건하였다. 혜근이 경주 분황사(芬皇寺)에서 수도할 때 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인심이 흉흉하였는데, 하루는 꿈에 용왕이 나타나 봉래산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가뭄이나 바람으로 근심하는 일이 없고 나라가 태평할 것이라고 하였다..
적상산 안국사(20050826) 적상산에는 안국사라는 절이 있었다. 적상호를 지나 한참을 더 올라가니 일주문이 반겨주었고 일주문 옆으로는 적상산성의 흔적인 돌담이 있었다. -----------일주문 앞뒤의 현판안국사에 대한 안내는 네이버의 백과사전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적상지(赤裳誌)에 따르면 1277년(고려 충렬왕 3) 월인(月印)이 세웠다고 하나 조선 태조 때 자초(自超)가 적산산성(사적 146호)을 쌓으며 지었다고도 전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 때 승병들의 거처로 쓰이기도 했다. 1613년(광해군 5) 증축하고 이듬해 사고(史庫)를 두어 사각(史閣)과 선원각(璿源閣)에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록》을 보관하고 덕웅(德雄)을 승장으로 하여 승병 92명을 두고 지키게 하였다. 이 때 사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