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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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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서장대 3(20071225) 서암문을 지나니 서장대입니다.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를 말하며 수원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습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정조가 친히 쓴 화성장대란 편액을 달고 있었습니다. 서장대 앞에 서노대가 있습니다. '노대'는 쇠뇌를 쏘던 방어시설로 산 정상부에 위치하였고 화성에는 2개의 노대가 설치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성장대 앞의 서노대입니다. 서노대에 오르니 노대 난간에 올라서 쉬고 있는 두 아가씨 자세가 멋집니다. 서노대에서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구름 속의 해가 보입니다. 해무리가 생겼습니다. 수원시도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서장대에서 성곽을 계속 따라가면 화서문으로 갈 수가 있다고 하였지만 화성 행궁 앞..
수원화성-서장대 2(20071225) 성곽을 따라가다 누각과 비슷한 건물을 만났습니다. 서포루입니다.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이라고 합니다. 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서암문이 적에게 발각되어 공격받는 것에 대비하여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서포루 앞에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안내가 있습니다. 정말 자랑스러운 수원화성입니다. 서포루에서 성곽을 따라 조금 더 서쪽으로 가니 거대한 종각이 보입니다. 행궁을 돌아볼 때에도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종소리가 이 효원의 종을 울리는 소리였습니다. 안내판에 의하면 효원의 종은 유서깊은 효원의 성곽도시 수원시의 드높은 기상을 나타내는 효의 상징으로서 그간 중요행사에 타종해왔던 팔달동종이 낡았는데다가 소리가 작고 울림이..
수원화성-서장대 1(20071225) 화성 행궁을 돌아보고 나오니 왼편으로 산을 오르는 길이 있습니다. 서장대를 오르는 길입니다. 계단을 조금 올라가니 소나무 사이로 오솔길도 있습니다. 흙길을 걸으니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서삼치입니다.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도록 한 시설물로서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고 합니다. 치(雉)는 꿩을 말하는 것으로서 능히 자기 몸을 숨기고 주변을 잘 살펴보기 때문에 그 뜻을 따서 치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서삼치는 서포루와 서남암문 사이에 있습니다. 서삼치에서 남쪽으로 성벽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서남암문이 있고 암문 위에 서남포사가 세워져 있습니다.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화성행궁-화령전(20071225) 화성행궁 옆에 화령전이 있습니다. 순조가 선왕 정조의 효심과 유덕을 받들기 위해 세운 건물로, 정조의 진영(眞影)을 모시고 해마다 제향(祭享)을 드렸던 곳입니다. 운한각은 화령전의 정전으로 정조의 초상을 봉안한 건물입니다. 운한은 임금이 가뭄을 걱정하여 하늘에 기우제를 올릴 때 불려졌다는 시경의 시구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앞에는 제사때 악공들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월대가 있고 세 개의 계단이 놓여 있는데 가운데 계단은 혼백만이 사용하는 계단이라 합니다. 1801년에 만들어진 조선후기의 댜표적인 건물이라고 합니다. 외삼문·내삼문과 일직선을 이루며, 오른쪽에 제사를 준비하던 전사청(殿舍廳)이 있고, 우측 담장 바깥에 풍화당(風化堂)이 있습니다. 정전 편액(正殿扁額)의 <운한각(雲漢閣)> 3자는 순조의 친..
수원 화성행궁 4(20071225) 복내당이란 전각도 보았습니다. 복내당은 행궁의 내당(內堂)으로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렀던 곳이라 하였습니다. 복내당의 이름은 '복은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대장금'이라는 드라마를 촬영하였던 흔적들이 보입니다. 복내당에서 내려오니 유여택이란 전각이 있습니다. 유여택은 평상시에 화성유수가 거처하다가 정조가 행차시에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하는 건물이라고 합니다. 유여택 앞의 행각에 뒤주가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해시계도 있습니다. 유여택 앞의 전각에 악기들이 보입니다. 외정리소라고 하였습니다. 외정리소 앞으로 비장청, 서리청 그리고 남군영이 있습니다. 비장은 관찰사나 절도사등 지방관이 데리고 다니던 막료로 민정 염탐을 시키기도 하였으며 비장청은 화성 유수부의 비장들이 사용하..
수원 화성행궁 3(20071225) 봉수당 옆에 경룡관이 있습니다. 경룡관은 장락당의 바깥문으로도 사용한 부속 건물입니다. '경룡'이란 제왕을 상징하는 큰 용을 뜻하는 것으로 당태종이 거처한 궁궐 이름에서 따 왔다고 합니다. 1794년(정조 18)에 세워진 경룡관을 2층 구조로 건물의 2층은 모두 마루를 깔아 누마루를 만들고, 아래층은 3칸의 널문을 만들어 '지락문(至樂門)'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봉수당 남쪽에 장락당이 있습니다. 장락당은 1795년 을묘원행중 혜경궁의 침전으로서 화성 성역 중에 완성되었으며, 봉수당 남쪽에 있는데 봉수당의 서남쪽 지붕과 겹쳐 있으며, 동향으로 세워졌습니다. 장락당은 전한의 도읍인 장안성의 궁전이었던 장락궁에서 이름을 따 왔다고 하며 혜경궁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였던 정조는 한나라 태후의 거처였던 장락궁의 ..
수원 화성행궁 2(20071225) 좌익문을 지나니 중앙문이 있습니다. 중양문은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가로막아 굳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內三門)입니다. 중앙의 정문과 좌우의 우협문, 좌협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 좌우로 긴 행각을 두어 출입을 통제 하였다고 안내를 합니다. 1795년 봉수당 진찬례 때 봉수당 앞으로는 정조와 혜경궁을 비롯한 왕실의 종친과 대신들이 자리 하였고, 중양문 밖으로 대문을 활짝 열어 승지와 사관, 각신이 반열을 이루었다 합니다. 중앙문 옆에 글자를 그림으로 꾸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혁필의 장인이라고 하였는데 사람의 이름이나 가훈을 그림문자로 표현을 하였습니다. 중앙문을 들어섰습니다. 봉수당입니다. 봉수당은 화성 행궁의 정전(正殿)건물이자 화성 유수부의 동현 ..
수원 화성행궁 1(20071225) 월곶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늘 가보고 싶었던 수원의 화성을 찾았습니다. 월곶을 다녀올 때마나 수원의 이정표를 보았지만 시간이 여의치를 못하여 지나치기만 하였는데 이번에는 서둘러 집을 나섰고 11시 경에 수원의 화성행궁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들어오는 길목에 팔달문도 있었고 장안문 이정표도 보았지만 행궁부터 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화성행궁에 대한 소개는 수원시화성사업소의 홈페이제 내용을 그대로 옮겨적었습니다.화성행궁은 정조가 현륭원에 전배(展拜)하기 위하여 행행(幸行) 때에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평상시에는 부사(뒤에는 留守)가 집무하는 부아(府衙)로도 활용하였다. 정조는 왕 13년 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부터 정조 24년 1월까지 12년간 13차례에 걸친 원행(園行)을 정기적으로 행하였다. 이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