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상산에는 안국사라는 절이 있었다.
적상호를 지나 한참을 더 올라가니 일주문이 반겨주었고
일주문 옆으로는 적상산성의 흔적인 돌담이 있었다.
-----------일주문 앞뒤의 현판
안국사에 대한 안내는 네이버의 백과사전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적상지(赤裳誌)에 따르면 1277년(고려 충렬왕 3) 월인(月印)이 세웠다고 하나
조선 태조 때 자초(自超)가 적산산성(사적 146호)을 쌓으며 지었다고도 전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 때 승병들의 거처로 쓰이기도 했다.
1613년(광해군 5) 증축하고 이듬해 사고(史庫)를 두어 사각(史閣)과 선원각(璿源閣)에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록》을 보관하고 덕웅(德雄)을 승장으로 하여 승병 92명을 두고 지키게 하였다.
이 때 사찰 이름을 안국사라고 바꿨으며, 1910년에 사고의 책을 규장각으로 옮기자 이철허(李徹虛)가 사고 건물을 경내로 이전하였다.
1990년 초에 댐 건설로 절 지역이 수몰지구에 포함되자 1991년부터 이전을 시작하여 1993년에 절을 완전히 옮겼다.
건물로는 극락전과 천불보전·청하루·지장전·삼성각·범종각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된 전각으로,
내부에는 본래 1772년(영조 48) 제작된 후불탱화가 있었으나 최근 도난당하였으며 현재의 탱화는 최근에 만든 것들이다.
1997년 8월 보물 제1267호로 지정된 안국사 괘불은 1728년(영조 4)에 의겸(義謙)·의윤(義允) 등 비구니 5명이 그린 것이다.
가로 1,075cm, 세로 750cm이며 가뭄 때 이 괘불로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일주문을 지나니 반듯한 누각이 나왔다.
청하루이다.
청하루에 올라둘러보니툭터인전망이 가슴을 시원하게 하였고 멀리덕유산 향적봉도 볼 수 있었다.
------------극락전 앞의 뜰에서 본청하루와하늘
--------------청하루에서 본 덕유산
청하루 아래의 계단을 오르니 극락전과 당간지주, 범종각 등이 제자리에서 반겨주었다.
----------안국사 극락전의 정면 모습
-------극락전 앞의돌(?)과 솥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당간지주
---------보물인 탱화와 불상
다시 청하루를 나와 절 아래를 내려오니작은전각 아래에 우물이 있었다.
꽤 큰 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는데물이 가득하였다.
높은 곳이라 물이 귀해서 모아두는 것인지
물이 많이 나서 이렇게 보호하는 것인지알아보지 못하고 내려왔다.
지금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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