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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의 풍경 1(20070103) 지난 1월 3일 강화도를 갔었지요.강화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석모도를 찾았습니다. 차도 함께 배를 탔습니다. 평일이라선지 그렇게 붐비지는 않았지만 석모도를 가는 외포리항에는 차가 선착장에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외포리항은 너무 평온합니다. 배가 출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놀고 있는 갈매기는 날아들지 않습니다. 새우깡을 준비한 사람들이 새우깡을 던집니다.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갈매기들이 날아듭니다. 석모도 일주를 시작하였습니다. 바닷가에 멋진 집들이 있습니다. 멀리 조금 전에 배를 탔던 외포항이 보입니다. 넓게 펼쳐진 들길을 지나면서 이곳이 강화도 앞의작은 섬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들판에 마을이 있었는데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들 복판에 한채씩 있는 집은 낯선 풍경으로 보였습니다.
저도 연육교(20070330) 가포에서 벚꽃을 보고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마산의 9경 중에 하나인 저도연육교를 보러 갔습니다. 저녁 햇살을 받으면서 예전의 다리와 새로 만든 다리가 나란히 반겨주었습니다. 예전의 다리는 '콰이강의 다리'라고도 하였지요.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차 한대가 겨우 다닐 정도였는데 지금은 곁에 새로 다리가 놓이고 예전의 다리는 걸어서 다니도록만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사랑 고백을 한 흔적이 다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랑 고백을 받은 사람은 무척 행복하였을 것이라고 같이 간 일행이 부러워 하였습니다...........
마산 가포의 벚꽃(20070330) 진해에 벚꽃 축제가 지난 3월 23일부터 시작이 되었지만 날씨가 좋지를 않아 찾지를 못했습니다. 이번 주초부터 계속 흐린 날씨로 진해흫 간다하면서 가지 못했는데 모처럼 화창한 날씨가 되어 진해를 가려다 너무 붐빌 것 같아 마산의 가포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산한 도로를 달릴 수 있어 좋았고 벚꽃이 활짝 피어서 반겨주었습니다. 벚꽃 옆에 동백과 목련도 함께 피어 있었습니다.
강화도 마니산 2(20070102) 오르는 길에 참성단과 관련된 안내들이 계단의 지루함을 달래어 주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길이 대부분 나무가 울창하여 조망을 가렸지만 한 곳에는 시원하게 강화도를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날씨가 흐리고 늦은 시간이라 흐릿하게 보여서 아쉬웠습니다. 산 위에 돌로 쌓은 구조물이 보입니다. 주변에 철망으로 접근을 막고 있었습니다. 마니산 정상에 있는 사적 제 136호인 참성단입니다. 참성단은 성단은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훼손되고 있어 현재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며 개천대제, 체전성화채화, 연말연시 해맞이 행사시만 개방한다고 안내가 있었습니다. 어제(1월 1일)는 참성단을 개방하였다는데 하루가 늦어 참성단에 들어갈 수가 없어 아쉬웠습니다. 참성단 앞의 봉우리는 헬기 착륙장이었습니다. 그 옆의 나무기둥에다가 마니산 ..
강화도 마니산 1(20070102) 시흥의 월곶에 사는 아이들에게 갔다가 강화도의 여러 곳을 돌아보았습니다. 월곶에서 강화도 초지대교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초지진과 정수사, 전등사를 돌아보았는데도시간이 조금 남아 있어전국체전의 성화를 채취하는 참성단이 있는 마니산을 찾았습니다. 정수사와 전등사를 돌아보고 오느라고 시간이 늦었는데 입장을 하려니 되도록이면 빨리 다녀오라고 주의를 줍니다. 날씨도 흐리고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고 어두워진다고 하였습니다. 입장표를 받고 있는 초입은 잘 정리된 길이었습니다. 조금 오르니 계곡에 만들어진 다리의 모습이 멋집니다. 계곡에 돌 사이로 흐르는 물은 얼지 않았지만 고인 물은 얼어붙고 있었습니다. 마니산을오르는 길이계단로와 단군로로 나누어지는 곳에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계단로는 마니산 기도원을..
강화도 전등사 4(20070102) 명부전 앞으로 전등사를 돌아나오니 종루 앞에 식수대가 있었습니다. 돌로 만든 식수대에 물바가지가 가지런히 자리하고 물속에 자기 모습을 비추어보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은 누구나 쉽게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안내하는 표시가 눈이 잘 띄었거든요. 나무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만든 의자도 멋졌습니다. 종무소 옆의 굴뚝은 소나무와 잘 어울렸지만 함석으로 만든 굴뚝과는 너무 비교가 되었습니다. 나오면서 남문까지 갔다가 성벽을 따라 달맞이고개를 돌아서 내려왔습니다. 열심히 돌아본다고 하였지만 사진을 살펴보니 빠진 곳이 제법 있습니다.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을 보기위하여 언제 다시 가고 싶습니다.
강화도 전등사 3(20070102) 삼성각을 지나 정족산사고를 찾아 갔습니다. 돌아보니 법당 지붕들이 서로 나란히 사이좋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실록을 보관하였던 정족산 사고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담 너머로 보고는 내려왔습니다. 정족산 사고를 돌아보고 내려오니 사립문을 지납니다. 사립문을 들어서니 장작을 패다가 그만둔 모습도 보았습니다. 바로 옆에 ㅁ자 지붕이 보입니다. 적묵당의 지붕 모습입니다. 극락전을 돌아서 내려왔습니다. 극락전 앞에서 내려다 보니 대웅전과 대조루, 그리고 주변의 전각들이 한 눈에 보입니다. 차례대로 명부전이고, 그 옆에 약사전은 명부전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다음은 향로전과 대웅전, 그리고 마주 보이는 곳이 종무소입니다. 대웅전 앞에는 종루와 대조루가 있습니다. 극락전 앞의 나무에다 달마대사를 새겼..
강화도 전등사 2(20070102) 전등사 법당 앞의 누각에 전등사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돌 계단을 오르고 누각 밑을 지나서 법당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 길을 연등이 안내를 하는 듯합니다. 스님을 따라 가려다가 전등사 현판이 걸린 계단으로 법당을 찾았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전등사에 대하여 소개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군 왕검의 세 왕자가 쌓았다는 정족산 삼랑성(사적130호)내에 위치한 전등사는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왕실의 원찰로서 眞宗寺(진종사)라 불리워 왔다. 지금의 전등사란 명칭은 고려 충렬왕 8년(1282)에 왕비 정화궁주가 옥등잔을 부처님께 바친 데서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보물 178호인 대웅보전은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집으로 광해군 13년(1621)에 지어진 조선 중기 건축물로서는 으뜸이며 특히 내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