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법당 앞의 누각에 전등사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돌 계단을 오르고 누각 밑을 지나서 법당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 길을 연등이 안내를 하는 듯합니다.
스님을 따라 가려다가 전등사 현판이 걸린 계단으로 법당을 찾았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전등사에 대하여 소개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군 왕검의 세 왕자가 쌓았다는 정족산 삼랑성(사적130호)내에 위치한 전등사는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왕실의 원찰로서 眞宗寺(진종사)라 불리워 왔다.
지금의 전등사란 명칭은
고려 충렬왕 8년(1282)에 왕비 정화궁주가 옥등잔을 부처님께 바친 데서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보물 178호인 대웅보전은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집으로
광해군 13년(1621)에 지어진 조선 중기 건축물로서는 으뜸이며
특히 내부의 불단위에 꾸며진 닫집의 華麗精緻(화려정치)한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고종 3년 병인양요시 프랑스군에 대항하여 결사호국의 각오로 전투에 임했던 장병들이
무운을 부처님께 빌기 위해 대웅보전의 기둥과 벽면에 자신들의 이름을 써놓은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다.
대웅전 네 모서리 기둥 윗부분에는 벌거벗은 여인상을 조각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절을 짓던 목수의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친 여인을 조각한 것으로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고 한다.
대웅전 내부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천장은 용,극락조,연꽃등으로 화려하게 채색하였고,
부처를 모신 불단과 닫집의 장식 또한 화려하다.
보물179호인 약사전을 비롯한 10동의 건물과, 11세기 중국 북송때 만들어진 보물393호인 범종,
유형문화재 26호인 순무천총양헌수승전비, 지방문화재인 7호인 대조루와
실록과 王室世譜(왕실세보)를 보관했던 장사각지와 선원보각지,
전설이 서려있는 나녀상, 열리지않는 은행나무, 우는나무 등 많은 고목이 있다.
전등사에 전해지는 유물로 대표적인 것 중 보물 제393호로 지정된 범종은
전형적인 우리나라 종과는 그 형태가 판이하며 완전한 중국의 종으로 보고 있다.
법당을 들어가는 입구가 대조루의 밑이었습니다.
누각 밑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날아갈 듯한 자태로 맞아줍니다.
방금 지나온 대웅전 맞은 편의 누각이 대조루입니다.
누각 옆에 나란히 종루가 있었습니다.
보물로 지정을 받은 전등사 범종은 이곳 종루가 아닌 명부전 앞의 종각에 있었습니다.
대웅전 옆에 큰 그릇이 있었습니다.
속이 비어 있었는데 무엇을 담는 그릇인지 궁금하였습니다.
대웅전의 왼쪽 뒤편에 삼성각이 있었습니다.
돌 계단 길을 오르면서부터 정성껏 아기 점지를 빌 것 같은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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