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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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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선암사 2(20070311) 선암사의 강선루에서 일주문을 가는 길은 두번을 휘감고 돌아갑니다. 수령이 꽤 나가는 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고사목에 돌을 끼워놓고 소원을 빌기도 하나 봅니다. 일주문을 지나니 범종루가 압도하듯이 다가옵니다. 태고총림조계산선암사라는 범종루의 현판 글씨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선암사의 가람배치는 건물들이 좌우 방향으로는 다소 넓으나 전후 방향으로 조밀하였습니다. 좁은 곳에 여러 전각을 세우려니 그러할 수 밖에 없다는 안내를 어디선가 본 것 같습니다. 선암사의전각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대웅전 앞 좌우에 서 있는 삼층석탑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등산 차림의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를 잇는 산행로가 있어 조계산 산행도 하고 사찰도 돌아볼 수 있어 많은 분들이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눈이 제법 날립..
조계산 선암사 1(20070311) 광양의 청매실농원에 매화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은 붐빌 것이라고 순천의 선암사에서 모이기로 하였습니다. 선암사에 도착을 하니 10시입니다. 해심님, 하늘지기님, 산비탈님, 솔잎향님, 애플님, 빗방울님 그리고 저희 내외 모두 8명이 모였습니다. 산비탈님과 솔잎향님은 토요일에 구례에 오셨다가 아침에 광양을 잠시 들렸다가 선암사로 오셨다고 합니다. 바람은 많이 불고 기온은 차가왔지만 하늘이 너무 푸릅니다. 조계산 기슭 동쪽에 자리잡은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년)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을 짓고, 신라 경문왕1년 도선국사가 선종 9산 중 동리 산문 선풍으로 지금의 선암사를 창건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절을 가는 진입로에 보물 제400호인 아취형의 승선교는 받침대가 자연 암반으로 되어 있어 견고하며, 중앙..
금오산 향일암(20070224) 여수 돌산도 끝자락에 금오산이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고 바닷가 절벽에 향일암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향일암(문화재자료 제40호)은 전국 4대 관음 기도처 중의 한 곳으로 644년 백제 의자왕 4년 신라의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원통암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고려 광종 9년(958)에 윤필대사가 금오암으로, 조선 숙종 41년 (1715년)에 인묵대사가 향일암이라 개칭했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향일암을 오르는 길은 계단으로 된 길과 돌아가는 세멘트 포장길이 있었습니다. 길가에 동백이 곱게 꽃을 피우고 반겨주었습니다. 바위가 서로 포개지고 마주하여 생겨진 굴 사이로 난 길을 지나니 바위 위에 나무들과 어우러진 전각들이 반겨줍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석등이 멋집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련하여 불을 밝힐 밤을 ..
마이산 은수사(20061222) 탑사에서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산허리를 난 길을 조금 오르면 수마이봉 아래에 은수사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은수사를 소개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은수사는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고,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사지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이라 했다. 은수사 황혜수 주지스님에 의하면 "正"은 5획으로 오행, "明"은 일월이므로 정명암이란 이름은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라는 분에 의해 증창되었고, 이때 은수사로 개칭되었다. 은수사란 이름은 한글학회의 에 의하면, 태조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였으므로 지어진것이라 한다. 은수사는 본시 불당 겸 요사채로 쓰인 건..
마이산 탑사(20061222) 산의 두 봉우리가 말의 귀처럼 생긴 마이산은 탑사로도 유명합니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마이산의 남쪽 사면에 탑사가 있었습니다. 이 돌탑들은 1800년대 후반에 이갑용처사가 혼자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약 80여기의 탑들이 있는데 돌탑들의 형태는 일자형과 원뿔형이 대부분이고 크기는 다양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대웅전 뒤의 천지탑 한 쌍이 가장 큰데, 어른 키의 약 세배 정도로 5m의 높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높은 탑을 쌓아 올렸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갑용 처사는 낮에 돌을 모으고 밤에 탑을 쌓았다고 하였고 이 탑들은 이제 1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아무리 거센 강풍이 불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니,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탑사을 돌아보고 오른쪽으..
조계산 송광사 4(20061221) 그 외에도 많은 전각들이 있었지만 다 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특히 국사를 모신 국사전을 찾아보지 못함이 지금도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가야할 곳인가 봅니다. 나오는 길은 징검다리가 놓인 곳을 택하였습니다. 징검다리의 돌을 하나씩 뛰어넘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인 것 같았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록 바쁘게 다녔지만 겨우 대웅보전 주변만 맴돌다가 내려와야 했습니다.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나오게 되어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내려오면서 본 속이 빈 고사목은 사진 촬영의 명소일 것 같았습니다. 절을 오르는 길가에 소나무는 다른 절에서도 볼 수 있지만 송광사에는 쭉쭉 곧게 자란 편백이 특별나게 보입니다. 조계총림도장의 지석이 배웅을 하여 주었습니다. 약수를 지키는 동자스님은 목을 축이고 가라 합니다. ..
조계산 송광사 3(20061221) 대웅보전의 주변을 맴돌다가 문살을 담았습니다. 문살 하나에도 보통 정성이 아님을 보았습니다. 승보전 옆에는 송광사의 세가지 명물 중의 하나인 비사리구시가 있었습니다. 옛날 스님들의 밥을 퍼 놓았던 용기라고 하였는데 4,000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을 담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송광사의 세가지 명물은 이것 외에 천자암에 있는 향나무를 쌍향수라 하고 있고 또 하나는 능견난사라는 그릇인데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어떻게 포개도 다 겹쳐진다고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직접 찾아보지 못하고 와서 아쉬웠습니다. 그 앞을 스님이 동력을 이용한 수레에다 짐을 실어서 나르는 모습이 신기하였습니다.
조계산 송광사 2(20061221) 우화각과 천왕문을 지나서 종고루가 있었고 돌계단을 오르니 정면에 대웅보전이 보입니다. 대웅보전을 보고 그 규모에 놀랐습니다. 많은 절을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보아왔던 어느 절의 법당보다 크게 느껴졌습니다. 정면 7칸, 측면 5칸, 무려 35칸이나 되는 규모였지요. 아(亞)자형의 건물이라선지 지붕도 이중으로 된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대웅보전을 좌우로 지장전과 승보전이 있었고 정면으로 조금 전에 들어온 종고루와 우화각이 있었고 그 오른쪽에 박물관이 있었습니다. 대웅보전 뒤에는 설법전이 있었는데 들어가는 진여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문을 열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열지 못하였습니다. 문이 상당히 높아서 주변의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대웅보전의 지붕이 정말 넓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