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 (1321) 썸네일형 리스트형 경복궁 건청궁(20111224) 향원정 뒤에 자리한 건청궁입니다. 건청궁(乾淸宮)은 1873년 조선왕조 역대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御眞) 등을 보관할 목적으로 지어졌다가 을미왜변 직전 고종과 명성황후 거처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을미왜변 이듬해인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하면서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해 1909년에 일본인들에 의해 헐려 사라졌으며, 대신 그 자리에는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이후 이 미술관은 한동안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98년 철거됐고 건청궁 복원은 2004년 6월에 시작돼 3년여 만에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정문을 들어서니 작은 문에도 이름이 붙었습니다. 건청궁 내의 장안당입니다. 고종황제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추수부옹루의 처마가 날아갈듯한 모습.. 경복궁 향원정(20111224) 향원정 앞에 갔습니다. 연못 가운데에 정자가 아침 햇살에 고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위키백과에서 향원정에 대해 소개한 내용입니다.향원정(香遠亭)은 경복궁 후원에 있는 누각이다. 2층 규모의 익공식(翼工式) 기와지붕. 누각의 평면은 정육각형이며, 장대석(長臺石)으로 단을 모으고, 짧은 육모의 돌기둥을 세웠다. 1층과 2층을 한 나무의 기둥으로 세웠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4분합(四分閤)을 놓았다. 특히 연못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는 향원정의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1867∼1873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옛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새롭게 조성하였는데 연못 한가운데 인공의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정자를 지어서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향원정(香遠亭)이라 불렀다. .. 경복궁 흥복전 일원(20111224) 교태전을 보고 향원정을 가다가 들린 곳이 집경당과 함화당입니다. 흥복전 일원으로 이 일대는 후궁과 궁녀들을 위한 후궁 영역이라고 합니다. 침전으로 쓰였던 수많은 전각과 복잡한 행각들은 거의 사라지고, 현재는 함화당과 집경당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함화당과 집경당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고종이 건청궁에 머물 당시 여기서 외국 사신을 접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집경당입니다. 경복궁 교태전(20111224) 강녕전 뒤의교태전입니다. 교태전(交泰殿)은 왕비의 침전인 중궁전으로, 강녕전에서 양의문을 지나면 나타나는 정면 9칸 규모의 건물입니다. 교태란 양과 음이 교류한다는 뜻으로 주역에 있는 괘 이름이라고 합니다. 건물 뒷편에는 정원인 아미산이 있는데 아미산을 볼 수 있도록 후면동쪽에 마루와 방으로 연결된 건순각을 배치하였습니다. 강녕전과 마찬가지로 용마루가 없습니다. 왕비는 통상 좌측방을 이용하다가 임금께서 오시면 우측방에서 함께 합방하였고 그이유는 오른쪽은 양, 즉 임금을 상징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라 합니다. 교태전의 내부와 문살입니다. 교태전 앞에서 본 모습입니다. 뜰에는 관광객들로 가득합니다. 강녕전에서 교태전으로 통하는 양의문과 강녕전의 용마루가 없는 지붕의 모습이 보입니다.교태전은 옆으로 전각이 더 이.. 경복궁 강녕전(20111224) 경복궁 강녕전입니다. 편전인 사정전과 천추전, 만춘전을 보고 뒤로 가니 침전 영역으로 통하는 향오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복궁에는 왕과 왕비의 침전영역이 둘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이고, 다른 하나는 강녕전의 후면에 있는 양의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입니다. 향오문을 들어서니 바로 강녕전입니다. 강녕전(康寧殿)은 왕이 거처하던 침전(寢殿)으로 정면 11칸, 측면 5칸 규모의 초익공 팔작 지붕 건물입니다. 왕의 침전이므로 용마루가 없으며, 전면에 퇴가 개방된 중앙 어칸은 마루로 좌우는 온돌방으로 꾸몄습니다. 강녕전은 왕이 거처하던 곳인만큼 화재가 나지 않도록 신경을 썼는데, 굴뚝을 건물 가까이에 지을 수 없고 그렇다고 멀리 떨어진 곳에 굴뚝을 지을 .. 경복궁 편전 영역(20111224) 경복궁 근정전 뒤로 가니 사정문이 있습니다. 경복궁의 편전 영역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편전(便殿)은 왕이 평소에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는 곳이며, 또 종친, 대신들과 함께 주연을 즐기고, 왕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과거 시험을 치르기도 한 곳이라고 합니다. 경복궁의 편전 영역은 사정전(思政殿)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근정전 영역으로 통하는 사정문과 침전영역으로 통하는 향오문 사이에 사정전, 만춘전, 천추전이 남향하고 있으며, 그 주변을 행각이 감싸고 있습니다. 사정전입니다. 사정전(思政殿)은 왕이 나랏일을 보던 편전의 중심 건물로 좌우의 만춘전(萬春殿)과 천추전(千秋殿)과 함께 편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정전 앞에 있는 앙부일구입니다. 사정전 옆의 천추전입니다. 천추전(千秋殿)은.. 경복궁 경회루(20111224) 경회루 앞에 갔습니다. 눈이 하얗게 내린 경회루를 보았습니다. 경회루에 대해 위키백과에서 소개한 내용입니다.경회루(慶會樓)는 경복궁에 있는 누각으로, 국보 제224호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나라의 경사가 있을 대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지금의 경회루는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1867년에 새로 지은 건물로, 남북으로 113m, 동서로 128m가 되는 크고 사각진 인공 연못 안에서 동쪽으로 치우친 네모난 섬 위에 지은 정면 7칸, 측면 5칸 규모의 2층 누각 건물이다. 원래 경회루는 경복궁을 창건할 당시 서쪽 습지에 연못을 파고 세운 작은 누각이었는데, 태종 12년(1412년)에 연못을 넓히고 건물도 다시 크게 완성하였다. 태종은 창덕궁에서 정무를 보며 경복궁에 들어가기를 꺼렸으나,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연회.. 경북궁 수정전(20111224) 눈이 있는 모습의 경회루를 보려고 경복궁을 세세히 둘러보지 않고 경회루를 향했습니다. 경회루 앞에 자리한 수정전입니다. 수정전에 대한 위키백과에서 소개하는 내용입니다.수정전(修政殿)은 돌로 높고 넓게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세운 것으로, 원래 이 자리엔 세종대왕 때 훈민정음 창제의 산실이었던 집현전이 있었다. 1456년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집현전을 폐지하였고, 건물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탄 후 버려져 있었다. 1867년(고종 4년)에 건물을 다시 짓고 이름을 수정전이라 하였다. 왕이 나랏일을 보던 편전으로 추정되는 이 전물은 1894년 제1차 갑오개혁 때 군국기무처로 사용되었고 이후 내각의 청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수정전은 지금은 홀로 남아 있지만 둘레에는 담 역할을 하는 긴 집채인 행각들.. 이전 1 ··· 21 22 23 24 25 26 27 ··· 16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