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 (1321) 썸네일형 리스트형 창덕궁 성정각 일대(20111227) 12시에 후원을 돌아보려고 예약을 하여 후원 입구에 갔습니다. 후원 입구에서 본 담장과 전각들입니다. 후원 앞에서 작은 문을 통하여 들어간 곳에 누각이 있습니다. 성정각 일대의 전각으로 희우루입니다. 희우루 옆에 집희라는 현판을 전각도 있습니다. 선정전 앞 뜰에서(20111227) 선정전 앞의 뜰에 자태가 멋진 소나무가 있습니다. 소나무 앞에서 본 인정전입니다. 동쪽 행랑 뒤로 인정전의 지붕이 웅장합니다. 소나무 뒤로 푸른 기와의 전각이 보입니다. 선정전입니다. 인정전과 나란히 남향으로 자리한 모습입니다만 인정전에 비하여 규모는 훨씬 적습니다. 창덕궁 대조전(20111227) 대조전입니다.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왕비의 침전인 서온돌과 임금의 침전인 동온돌로 나뉘어집니다. 이 건물은 용마루가 없었습니다. 대조전 앞에 있는 드므입니다. 시간을 알려주는 해시계도 있습니다. 대조전 주변에서 본 전각들과 여러 모습들입니다. 경춘문이 열려 있어 들어갔습니다. 수라간과 그와 관련된 전각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각으로 꾸며진 전각도 보이고 꽃담과 굴뚝도 보입니다. 경훈각과 우물이 있습니다. 창덕궁 희정당(20111227) 선정전 동쪽으로 임금의 거처인 희정당이 있습니다. 창덕궁 선정전 앞에서(20111227) 인정전의 동쪽 행랑을 통하여 선정전이 있는 곳으로 나왔습니다. 선정전의 선정문입니다. 선정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선정전이 문에서 회랑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선정전입니다. 선정전(宣政殿)은 임금의 일상적인 집무 공간으로 쓰인 곳으로, 인정전 바로 동쪽에서 인정전과 나란히 남향하고 있습니다. 임금은 여기서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고 학문을 토론하며, 신하나 유생, 종친을 불러 시험을 치르기도 하였으며, 중국과 일본의 사신을 만나기도 하고 또 왕비나 왕족들과 크고 작은 연회를 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선정전은 인조 반정 때 불에 탄 뒤 인경궁의 편전인 광정전을 옮겨 지은 전각으로, 지붕은 푸른색 유리 기와를 덮었는데, 궁궐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청기와 지붕이라고 합니다. 선정전 주변은 회랑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창덕궁 인정전(20111227) 인정문(仁政門)을 통해 인정전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세 단의 월대 위에 서 있는 인정전(仁政殿)이 보입니다. '仁政'이란 '어진 정치'를 뜻한다고 합니다. 인정전은 태종 5년(1405년)에 창덕궁이 창건되면서 세워졌으나 몇 차례 화재가 일어나 다시 지어졌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순조 3년(1803년)에 불탄 것을 이듬해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 팔작지붕 건물로,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내부는 천장이 높아 통칸으로 트인 1층 건물입니다. 1985년 1월 8일 국보 제225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인정전의 월대를 오르는 계단 중간에 답도입니다. 답도에는 평평한 돌에 도드라지게 문양을 새겨 장식을 하였는데 구름 속을 나는 봉황 한 쌍이 새.. 창덕궁 인정문(20111227)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앞에 세워진 인정문입니다. 인정문 옆으로 펼쳐진 행각의 벽과 지붕이 합니다. 인정문 맞은편도 길게 회랑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창덕궁 금천교와 진선문(20111227) 수로 위에 다리가 놓였는데 금천교라 부른다고 합니다. 금천교는 1411년(태종11년)에 축조된 돌다리입니다. 조선의 궁궐에는 공통적으로 초입부에 풍수지리상 길한 명당수를 흐르게 하고 그 위에 돌다리를 놓았는데 특히 창덕궁의 돌다리는 그 아래 비단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비단(錦)에 내 천(川)자를 사용하는 錦川橋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다리 아래에는 남쪽의 해태상, 북쪽에 거북상을 배치하여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고 다리 중간에는 잡귀를 쫓는 귀면(鬼面)이 조각되어 벽사의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서 아름다운 난간석과 견고하고 장중한 축조 기술이 돋보인다고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금천교 뒤로 진선문이 보입니다. 진선문을 들어서니 반듯한 돌로 바닥을 ..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 16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