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남지를 돌아보고 부소산성을 올랐습니다.
백제의 한이 서린 곳이죠...........
입구가 사비문이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소개하는 부소산성의 내용입니다.
부소산성(사적제5호)
금강의 남안에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이 동서로 나뉘어 붙어 있고,
다시 그 주위에 북동쪽의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식(包谷式)산성을 동반한 복합식 산성으로,
성내에는 사자루, 영일루, 반월루, 고란사, 낙화암, 사방의 문지, 군창지 등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사비성, 소부리성(所扶里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이 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 도성의 일환이며,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 수도의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이 보다 먼저 500년(동성왕 22)경 이미 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천도할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605년(무왕 6)경에 대대적인 개수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일부의 성벽은 통일 신라 시기에 수축되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고을의 규모에 맞도록 축소되어 이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사비문을 들어서니 두레박으로 물을 기르는 모녀가 있었습니다.
물이 참 시원하였습니다.
부소산성을 돌아보는 길은 잘 정리가 되었습니다.
나무가 많아 조금은 시원하였고요.
부소산성 정문인 사비문을 지나 조금 걸어올라가니 삼충사가 있었습니다.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 사당에 들어서면 백제말 삼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었었고
해마다 10월 백제문화제때 제향을 올리고 세분의 숭고한 구국충절을 기린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옆 영지에 반영이 고왔습니다.
한참을 올라가니 영일루가 반겨주었습니다.
영일루는 부소산성의 맨 동쪽 산봉우리에 세워져 백제왕과 귀족들이 멀리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국정을 계획하고, 나라의 태평과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했던 영일대에 세운 누각이라고 안내를 하였습니다.
조금 더 가니 초원과도 같은 풀밭이 있었는데 궁창지라 하였습니다.
일명 만리창(萬里倉)이라 불렀던 이곳은 1915년 불에 탄 쌀이 발견된 군대 곡식을 보관했던 창고였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은 수혈병영지입니다.
군창지를 조금 지나면 움집이 있었다고 하였는데 보이지 않았습니다.
움집은 백제때 군인들의 움막을 발굴,복원한 것으로 1m 가량 움을 파고,
사방을 나무나 짚으로 벽을 두른 뒤 초가지붕을 얹은 모습이라 안내를 하였는데..................
원래 움집터와 저장고를 발굴한 곳에 전시실을 지어 구조를 자세히 살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부여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반월루가 있었습니다.
길가에 상사초가 꽃을 피우고 있었고요.
갈림길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백화정을 가는 길과 사자루를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사자루에 먼저 올랐습니다.
현판은 사비루라 하였더군요.
부소산 가장 높은 곳(해발 106m)에 위치한 사자루는 동쪽 영일루와 더불어 일월 음양을 뜻하며
달이 밝은 밤 누각에 오르면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펼져지고 시흥이 절로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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