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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중화전(20071222)


정해년도 저물어가는 12월 세째주에 서울에 갔습니다.
해마다 12월 말쯤에 서울을 다녀옵니다.
촌사람이기에 서울 나들이는 늘 설레임과 두려움이 반반입니다.
우리나라 제일 큰 도시를 보러가는 기쁨은 설레임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두려움도 없이 편하게 갈 수 있는데
가져가야할 짐이라도 있으면 차를 운전해야하는 게 길을 모르니 고역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도 차를 가져갔습니다.
시간이 나면 여기저기 다녀보리란 생각에 차를 가져갔지만
서울 시내를 다니기에는 촌사람에게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용케 덕수궁은 찾아 갔습니다.
덕수궁 입구인 대한문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덕수궁 돌담길로 접어들었고
주차장이 보여 너무도 반가와서 주차를 하였는데
나중에 주차비를 엄청 물었답니다................^^
그래도 촌사람이 덕수궁을 구경하고
서울 시청 앞의 루체비스타까지 보았습니다.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을 들어서니 하마 비와 돌다리인 금천교가 반깁니다.
대한문은 덕수궁의 정문으로 본래 이름은 대안문이었는데 1906년에 대한문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금천교는 궁궐을 드나드는 모두가 맑고 바른 마음으로 나랏일을 살피라는 뜻으로
명당수를 흐르게 하고 놓은 돌다리라고 안내를 합니다.
금천교를 지나 돌담길과 나란히 난 길을 따라 덕수궁을 둘러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중화문 앞에 갔습니다.
중화문 뒤로 중화전이 보입니다.
중화문과 중화전에 대한 소개는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에 소개된 내용을 옮겨 적었습니다.

덕수궁의 중화전 및 중화문은 각각 덕수궁의 정전(正殿)과 정전으로 드나드는 정문입니다.
덕수궁의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입니다.
경운궁의 정전은 즉조당(卽祚堂)이었는데,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1902년 즉조당 앞에 새로 중층 건물을 지어 중화전이라 하였습니다.
경운궁 중화전은 고종황제가 경운궁에 재위하는 동안 정전으로 사용하였던 건물로,
광무 8년(1904) 화재로 소실된 후 1906년 단층 전각으로 중건되었습니다.
중화전 앞뜰에는 공식적인 조정회의나 기타 국가적인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들의 위치를 표시한 품계석(品階石)이 어도(御道) 좌우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원래 중화전 영역 주위에는 장방형으로 2칸 폭의 행랑이 둘러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모두 철거되고, 현재는 동남부 모퉁이의 7칸만 남아 있습니다.

중화전과 함께 재건된 중화문은 경운궁의 중문이자 중화전의 정문입니다.
당초에는 중층 건물이었으나 1906년 중화전이 단층으로 축소 재건될 때 함께 단층으로 지어졌습니다.
전을 깐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중앙열 세 칸에 모두 판문을 달았습니다.
건물 전면을 덮을 정도로 넓고 완만한 돌계단 위에 서 있습니다.
가운데 문은 좌우의 문보다 문둔테 만큼 높으며, 문 위에는 풍형 홍살을 꾸며 놓았습니다.
비록 단층이기는 하지만 기둥의 높이가 훤칠하게 높아서, 문을 통해 중화전의 위풍이 나타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구조는 다포계 형식으로 살미첨차들이 서로 붙고, 내부는 운공형식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팔작지붕입니다.
중화전과 중화문은 조선왕조 최후에 지어진 궁궐건축으로 비록 규모가 작고 장식적이지만,
망국의 소용돌이에서 왕궁이 처했던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주는 증거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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