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곶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늘 가보고 싶었던 수원의 화성을 찾았습니다.
월곶을 다녀올 때마나 수원의 이정표를 보았지만 시간이 여의치를 못하여 지나치기만 하였는데
이번에는 서둘러 집을 나섰고
11시 경에 수원의 화성행궁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들어오는 길목에 팔달문도 있었고 장안문 이정표도 보았지만
행궁부터 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화성행궁에 대한 소개는 수원시화성사업소의 홈페이제 내용을 그대로 옮겨적었습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현륭원에 전배(展拜)하기 위하여 행행(幸行) 때에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평상시에는 부사(뒤에는 留守)가 집무하는 부아(府衙)로도 활용하였다.
정조는 왕 13년 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부터 정조 24년 1월까지
12년간 13차례에 걸친 원행(園行)을 정기적으로 행하였다.
이때마다 정조는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조가 승하한 뒤 순조 1년(1801) 행궁 곁에 화령전(華寧殿)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眞影)을 봉안하였는데,
그뒤 순조·헌종·고종 등 역대 왕들이 화성행궁을 찾아 이곳에 머물렀다.
따라서 이 행궁은 조선시대에 건립된 수많은 행궁 중 그 규모나 능행면에서
단연 으뜸이 될 만큼 건축물의 규모 뿐만 아니라 성곽과 더불어 정치적·군사적 면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홍살문 아래를 지나니 수령이 제법 오래인 나무 몇 그루가 있습니다.
출입구 양옆으로는 기가 줄지어 꽂힌채 바람에 나부낍니다.
화성행궁의 정문은 신풍루입니다.
처음에는 진남루라 하였는데 정조임금이 신풍루로 고치라고 명하였다고 합니다.
신풍루를 들어서니 왼편에 거중기가 있습니다.
수원화성을 쌓을 때 이용한 기구로 거중기가 있어 화성을 쌓을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앞을 막고 있는 좌익문으로 바로 가지를 않고
오른 편에 있는 집사청부터 돌아보았습니다.
집사청을 들어가는 입구에 나무가 소원을 담은 종이를 둥지에 가득 매달고 있습니다.
집사는 주인을 모시고 그 살림을 맡아하는 사람들로서 행궁의 집사청은
궁궐의 액정서(국왕이 쓰는 붓과 먹, 벼루 등을 보관하며 대궐안의 열쇠를 간수하고 여러가지 설비, 비품을 관리하는 관청)와 같이
잡다한 사무를 보던 집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라 합니다.
죄익문 밖 동북 담 안에 있는데 좌우 두 채의 건물로 이루어저 있습니다.
집사청 옆에 북군영이 있습니다.
북군영은 장용외영의 기마병이었던 친군위(親軍衛)가 좌,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숙위하는 건물로
신풍루 좌우에 있는데 북쪽에 위치한 것이 북군영이고 남쪽에는 남군영이 있습니다.
담장이 높고 반듯하였습니다.
좌익문 옆에 전통 놀이기구들이 있습니다.
다들 놀이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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