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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탐방

영구산 운주사3(20090614)


칠성각 앞의 뜰에 발우를 닮은 석탑이 있습니다.
원형구형탑이라고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날씬하게 솟아오른 기단면석에 놓인 넓고 둥근 초가지붕같은 기단갑석 그 위로
점차로 작아지는 육중한 원형의 옥개석(지붕돌)이 탑신을 과감히 생략해 버린채 겹겹이 올라가 있다.
엄격한 형식과 규격을 뛰어넘어 더 본질적인 부처의 세계로 대자유의 정신으로 접근하려고 애쓰는
염원이 운주사의 정신이라고 한다면 이 발우형 석탑이야말로 으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미래 부처님인 미륵부처님이 고통에 시달리는 우리 중생을 어서 구원하러 오시라는 염원으로
발우형(스님들 공양그릇)석탑을 세웠던 듯 싶다.
퇴수후 가장 큰 발우 순으로 밑에 놓고 그릇을 쌓아올렸던 삶의 지혜처럼
둥근 돌과 돌을 포개어 쌓아올린 정성과 사상이 돋보인다.
저렇게 둥글고 무거운 돌을 어떤 건축 기술로 다듬어 쌓아올렸을까 생각해보면 참으로 신비롭다.
이 탑은 일제시대 때 찍은 사진에는 7층이었으나, 그후 3층이 소실된 것을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칠성각을 오르지 않고 옆으로 가면 언덕 아래에 또 한군의 불상군이 있습니다.
코가 없어진 불상도 보이고 얼굴 반이 날아간 불상도 보입니다.

근엄하게 앉아있는 불상이 아버지처럼 엄숙해 보이고
그 옆에 얼굴이 반쯤 떼어진 작은 불상이 응석받이 아들 부처 같다.
예전에는 기단위의 단위에 모셔져 있었는데 훼손의 정도가 심하여 단도 사라지고 바닥의 판석위에 모셔져 있다.
그리고 아들불상도 제 짝이 아닌 기단석 위에 놓여져 있다.
원래는 아버지 부처 뒤에 앉아 있었는데 그 배치가 어찌되었는지 흐트러진 상태다.
아버지불상 뒤에 움푹 패여 닳아진 부분이 아들 불상이 앉았던 자리인데 잔바람에도 자꾸 들썩거려 신비롭게 파였다한다.
오른쪽의 부부부처도 원래는 어깨를 마주대고 있었는데 떼어 놓았다한다.
득남설화와 관련하여 부부 불상의 코의 파손이 매우 극심하다.










불상군 옆에 약수가 있습니다.
졸졸 흐르는 물을 받아 한모금 마시니 이가 다시립니다.




칠성각 뒤로 언덕에 올랐습니다.
바로 대웅전 뒤입니다.
명당탑과 4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명당탑에 대한 소개입니다.

운주사의 주산인 거북이산(영귀산) 머리 정수리에 위치한 탑으로써 넓적한 하대석에 사각형의 기단면석 위에 놓인 둥근 원반형 석탑이다.
운주사의 석질은 이렇게 시루떡처럼 잘 갈라지는 특성이 있어서 특이한 형식의 석탑 제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넓고 둥근 돌을 둥근 탑신을 세운 그 위에 층층이 올려 놓았다.
그러나 옥개석 밑면을 보면 연화무늬가 둥그렇게 새겨져 있다.
지금 남은 탑은 자세히 보면 그 석질이 서로 다른면을 발견할수 있다.
이곳이 천년을 지배할 황제가 태어날 천년 군황지혈이라 하여 명당을 찾는 무리들에 의하여 그 훼손의 정도가 남다르다.
앞의 4층 석탑도 훼손의 정도가 극심하다.






4층석탑에 대한 안내입니다.

분황사지 전탑(벽돌탑) 양식의 석탑을 빼어닮은 완전한 신라탑의 유형이다.
전탑양식은 벽돌을 쌓아 만든 탑으로 그 형식에 있어서 옥개석(지붕돌)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목조 기와지붕의 양식이 아니라 계단식 지붕형태를 보여주는 점이 그렇다.
지금은 4층만 남아있으나 실재로는 7층 혹은 9층은 되었음직한 크기다.
일설에는 이 탑을 건립할 때 맑은 날 거대한 이무기가 감고 올라가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져 그 요물을 벌하였는데 그때 이렇게 파손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운주사의 석질은 사토에 모래와 자갈이 섞인듯한 토속적인 돌담양식의 인상을 주고 있다.
반들반들 윤기가 나지 않고 거친듯하면서도 다정다감 포근한 인상을 더해준다.




명당탑 앞에 서니 운주사 대웅전 앞의 모습이 정말 멋집니다.
이곳이 운주사 최고의 명당자리인가 봅니다.



명당탑과 4층석탑을 보고 산을 올랐습니다.
가는 도중에 절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도 보았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마애여래좌상에 대한 소개입니다.

거대한 바위벼랑 암벽의 요철부분을 그대로 살려 부조로 새긴 불상이다.
육계는 두툼하게 솟아있으나 머리와 이마가 거의 없고
희미한 눈썹과 귀는 양각되었으며 귓바퀴까지 음각되었다.
타원형으로 부드럽게 부조된 상호는 눈과 입이 희미하다.
오랜 풍상에 마모되어 최근에도 바위가 균열되어 떨어지는 등 파손의 정도가 극심하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마애여래좌상 위에 바위구멍이 뚫어진 걸로 보아 보호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을 조형한 이는 이름도 없이 이미 죽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겠으나
그가 추구한 이상은 오늘도 희미하게 남아 우리를 반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공사바위를 찾아 산을 올랐습니다.
마애여재좌상이 새겨진 절벽 뒤의 산을 오르니 영귀산 중턱에 큰 바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공사바위인가 봅니다.
운주사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공사바위의 내용입니다.

영귀산 8부능선 산마루에 놓인 거대한 둥근 바위이다.
위에 오르면 운주사 탑과 불상들 그리고 먼 산들이 한눈에 발아래 굽어 보인다.
바위 이곳 저곳을 움푹 파 인공으로 조성한 자리가 여럿 보인다.
그중 가장 아래 큰 자리가 도선국사가 앉아서 운주사 천불 천탑의 대공사를 관리감독했다 하여 공사바위라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작은 자리들은 직급에 따라 제자들이 앉았던 자리라 한다.
이 공사바위는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모두 관찰할수 있으며 비가 오면 바위 아래 움푹 패인 의지처가 있어 그곳에 들면 안전하게 지낼수 있다.
수많은 수행스님이나 도인들이 그 자리에 앉아 수행을 했었던 듯 반들반들 닳아져 있다.
이곳에 이 바위 한덩어리가 솟아올라 있는 것도 신비로운데 또 그것을 국가와 민족의 운명과 고난받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사용한 선인들의 혜안과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다.







공사바위에서 내려와 와불이 있는 언덕을 가려고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대웅전 뒤를 지나다가 담 너머로 보이는 장독을 보았습니다.
정겨운 모습입니다.



전각 주변의 뜰에 꽃이 곱습니다.
송엽국과 금영화입니다.










범종각 옆으로 와불 가는 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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