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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탐방

영구산 운주사1(20090614)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화순의 운주사에 다녀왔습니다.
전날에 영광군의 불갑사와 백수해안도로를 돌아보고
법성포에서 삶님께서 사주시는 맛난 조기한식을 먹고나니 여덞시가 넘었습니다.
마산에서 3시간도 더 걸리는 전남지방까지 왔었고
다음날이 일요일인지라 시간도 있어 남원을 둘러 산청으로 가다가 마음이 바뀌어
화순의 운주사를 목적지로 하였습니다.
광주를 지나 운주사 근처의 도곡온천에서 묵고는아침 이른 시간에 운주사를 찾았습니다.
일주문 앞의 주차장이 텅빈 상태입니다.





운주사에 대한 소개는 운주사 홈페이지의 내용을 대신합니다.


천불산 다탑봉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불교의 깊은 혼이 서린 운주사는 우리나라의 여느 사찰에서는 발견 할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불사를 한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운주사 재천불산 사지좌우산척 석불석탑 각일천 우유석실 이석불 상배이좌(雲住寺 在天佛山 寺之左右山脊 石佛石塔 各一千 又有石室 二石佛 相背以坐)라는 유일한 기록이 있다.
이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는 내용으로 보아
정말 그때까지만 하여도 석불 석탑이 일천기씩이 실존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 후 조사한 기록을 보면 석탑이 22기, 석불이 213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석탑 17기, 석불 80여기만 남아있어 역사 속에서 끝없이 유실되어온 뼈아픈 세월을 살아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네차례의 발굴조사와 두차례의 학술조사를 하였으나
창건시대와 창건세력, 조성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확증을 밝혀내지 못하여 운주사 천불천탑은 여전히 불가사의한 유적으로 남아있다.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 바위너설 야지에 비로자나부처님(부처님의 빛, 광명)을 주불로 하여 여러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있다.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이러한 불상배치와 불상제작 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볼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또한 운주사 석탑들은 모두 다른 모양으로 각각 다양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연꽃무늬가 밑에 새겨진 넙쩍하고 둥근 옥개석(지붕돌)의 석탑과 동그란 발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을 닮은 백제계 석탑,
감포 감은사지 석탑을 닮은 신라계 석탑, 분황사지 전탑(벽돌탑) 양식을 닮은 모전계열 신라식 석탑이 탑신석의 특이한 마름모꼴 교차문양과 함께 두루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운주사 탑들의 재료로 쓰인 돌은 석질이 잘 바스라져서 오히려 화강암질의 강한 대리석보다 더 고도의 기술을 습득한 불모(석공)님이 아니면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석질로 빚어만든 탑이 이렇게 수많은 세월의 풍상을 버티어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이곳의 조형자들의 기술이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는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듯 싶다.

운주사 서쪽 산능선에는 거대한 두 분의 와불(미완성석불)님이 누워있다.
조상 대대로 사람들은 “이 천번째 와불님이 일어나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말을 전해왔다.
아마도 운주사 천불천탑은 우주법계에 계시는 부처님이 강림하시어 하화중생의 대 설법을 통한 불국정토의 이상세계가 열리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조성한 대불사가 아닐까한다.


일주문을 지나 계곡을 따라 난 길로 법당을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산을 올려다 보니 능선에 무덤 몇기가 보입니다.
참 좋은 곳에 자리한 무덤입니다.
산 아래 풀밭에는 불상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가려면 계곡을 건너 잔디밭을 지나야 했습니다.
하여 내려오면서 자세히 살펴보리라 미루고 멀리서 그 모습만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리 오래 가지 않아 평지가 나왔습니다.
석탑과 불상들이 보입니다.
평지 초입에 무려 9층이나 되는 석탑이 맞아줍니다.
보물 제796호로 지정을 받은 9층석탑입니다.
운주사의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내용을 그대로 옮깁니다.

탑 높이 10.7M로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화사하고 수려한 탑이다.
가는 옥개석(지붕돌)과 처마의 끝이 백제식 목조건물처럼 치솟아 세련미가 느껴진다.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형식과 같아서 백제계 석탑이라 한다.
탑신석 안에 겹마름모꼴의 기하학적 무늬와 네잎의 꽃잎 문양은 유일하게 운주사의 탑만이 간직하고 있다.
겹마름모꼴은 사방팔방에 계신 부처님을 그리고 중앙의 네잎의 꽃잎문양도 사방불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처마안의 무늬를 보면 밝은 빛이 하늘로 치솟는 듯한 인상이다.
운주사에 있는 각 골짜기의 부처님이 비로나자불(부처님의 빛, 광명)을 주불로 모시고 있는만큼,
이처럼 환한 빛살이 중앙에서 하늘로 퍼져오르는 문양을 보고 있노라면 비로자나탑이라 불러도 좋을 듯 싶다.
아래 거대한 기단석도 잘라서 운반하였고, 일설에는 이 탑을 운주사 중심탑이라하여 돛대탑이라 부르기도한다.


9층석탑을 필두로 7층석탑1, 7층석탑2가 줄을 지어 섰습니다.
멀리 전각도 보입니다.






9층석탑이 자리한 곳의 오른쪽 언덕 아래에 불상 몇기가 절벽에 기대어 있습니다.
제대로 다듬지 않은 불상들이 오히려 정겹습니다.
불상 앞에 꿀풀들이 피어서 친구가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9층석탑 옆의 불상군에 대한 안내입니다.

합장 수인의 모양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부처님(부처님의 빛, 광명)을 주불로 하여 배치된 형식이다.
바위너설 안에 모셔져 있는데 자세히 관찰해보면 풍우를 피할수 있게 바위 너설 위를 인공적으로 다듬어 낸 흔적을 엿볼수 있다.
바위너설이 실내의 법당 역할을 훌륭히 해낼수 있도록 조성한 듯 싶다.
다른 곳의 불상 보다도 그 생긴 모양이 특이하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가 인상적이다.
그저 우리 이웃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마치 천불천탑을 세웠던 듯 이런식으로 불상이 배치된 것을 보면 마치 천불이 이곳에 실재했는 듯 싶다.
맨 오른쪽 불상 대좌 뒤편에서는 8-9세기로 추정되는 금동 불상과 여래 입상이 출토 되었다.
특이하게도 중성불의 개념을 깨뜨려 아버지부처 어머니부처 아들 딸 부처로 부르고 있는데
운주사 불상을 바위너설 야지에 집단적으로 배치한 모습과 더불어 이 또한 운주사만이 가지는 특이한 개성이라 할만하다.





조금 더 안쪽에 또 석불군이 있습니다.
두번째 석불군에 대한 소개입니다.

마치 재래 시장의 오일장 거리에 나선 듯 바위 너설에 크고 작은 불상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서로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르고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같은 장날의 거리 풍경처럼 길가에 소중히 기른 채소며 집짐승 산나물들을 들고 나와 전을 열고 있는 착각에 빠져든다.
세상 살아가는 인생의 아프고 슬프고 기쁜 이야기를 나누는 듯 소란스럽다가도 언뜻 보면 고요한 좌선 삼매경에 들어 주위가 언뜻 외경스럽다.
편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교차되어 오가는 듯 마음의 문을 열어 그 안에 부처님들이 줄줄이 늘어서서 번뇌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8만 4천 법문을 들려 주는 듯 싶다.
크고 작은 불상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열된 모습이 특이한 풍광을 자아낸다.






9층석탑을 지나니 7층석탑 2기가 줄을 지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앞쪽의 7층석탑 안내입니다.

정사각형의 기단에 둥그런 원형을 둘러 그 위에 탑을 세웠다.
옥개석(지붕돌)이 육중하고 날렵해 활달한 남성적인 위용이 느껴진다.
기단석을 이렇게 반듯하게 다듬어 이곳으로 운반해 여기 꼭 이 탑을 세워야만 했던 까닭을 생각해보면 운주사 조성자들의 심오한 의도가 궁금해진다.
직선적이고 다소 가파른 처마의 선, 우람한 옥개석의 인상이 신라탑의 원형인 감포 감은사지 석탑과 유형이 닮아서 탑의 형식적 분류상 신라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은 예전 백제땅인데 왜 이곳에 신라탑이 함께 조형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운주사 탑들이 던져주는 의미는 매우 파격적이다.
반듯한 기단부와 우람한 옥개석이 연이어 오른 모습이 야무지고 단단한 사내의 웅혼한 기상이 넘쳐 흐르는 듯 하다.





두번째 7층석탑입니다.

탑신에 개성적인 교차문양을 갖고있는 날렵한 인상의 칠층석탑이다.
기단석도 잘 다듬어서 이곳으로 운반하여 그 위에 직사각형으로 돋을 새김하여 탑을 세웠다.
운주사의 탑의 기단부나 탑신부는 네 개의 직사각형 돌을 반듯하게 다듬어 세우고
그 위에 옥개석(지붕돌)을 올려 놓은 형식으로 건립하였다.
때문에 그 가운데는 텅비어 있다.
네개의 돌판을 이어 올려 육중한 옥개석의 무게 중심을 지탱하고 있는 그 신비로운 건축술을 생각해보면
조상들의 지혜가 어떠한것인가를 가늠해보게 한다.
교차문양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마름모꼴들의 연속이다.
동서남북 사방의 부처의 기운이 이곳으로 한데 모여 사방팔방 부처의 세계가 아닌곳이 없이
자비의 빛으로 온세상을 환하게 밝히기를 염원하는 깊은 뜻이 깃든 게 아닌가싶다.





석탑 3기를 지나니 광배를 갖춘 불상과 함께 불상 3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광배를 갖춘 불상에 대한 안내입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의 수인을 하고 있는 사다리꼴형의 판석에 돋을 새김하여 새겼다.
가늘고 길게 솟은 코, 두툼한 입술 크고 긴 귓바퀴가 선명하다.
육계는 솟아 있으며 합장한 수인과 법의 자락은 그저 선만으로 처리되었다.
이러한 광배를 갖춘 불상은 매우 특이한 유형이다.
주변전체에 동글동글 구름문양의 화염문을 아름답게 음각하였다.
이렇게 화염문을 음각한 정도의 수준이라 한다면 이곳 조성자들이 불교 사상에 정통하였다는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얼굴은 뚜렷하지 않지만 권위나 위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매우 정겹고 친근감이 가는 모습이다.
발굴 조사때 조선시대때의 기와가 많이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 목조 기와집을 지어 모셨던 것으로 추정된다.





광배를 갖춘 불상 앞에서 돌아보니 9층석탑과 7층석탑 두기가 아름답습니다.




오른편 언덕 아래에 또다른 불상군이 보입니다.
일주문에서 부터 들어오면서 만나는 세번째 불상군입니다.
불상군 위에 7층석탑 한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한 돌부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발가락이 선명하고 그 인상 또한 친근감이 묻어나온다.
가장자리에 서있는 애기 돌부처는 마치 갓난아기마냥 정겹고 앙증맞다.
발가락과 손 모양이 너무나도 귀엽다.
운주사의 불상들이 갖는 특질들은 이렇게 너나가 따로 구분되어 높은 단위에 올라 위압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함께 각기 다른 개성으로 정겹게 하나되어 있다는 그 어울림에 있다.
남편과 아내 갓난 아이가 오손도손 정겹게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
마치 부처님의 자비로운 세계가 실현된 듯 사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곳곳에 일부분만 남은 불상들이 보입니다.
머리만 남은 불상, 어느 부위이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것들도 보입니다.



세번째 7층석탑입니다.
석조불갑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