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처가가 있는 곳이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가의 말뚝에도 절을 한댔는데...........
그래서 진주를 소개하여 좋은 점수를 얻고 싶다.
진주의 유명한 곳으로 촉석루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 촉석루가 있는 곳이 예전에는 성이었다.
지금은 잘 단장을 하여 진주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진주성의 안내를 백과사전에서의 내용을 그대로 올렸다.
사적 제118호. 1963년 지정. 일명 촉석성(矗石城)이라고도 한다.
본래 백제 때의 거열성지(居烈城址)였다고 하며,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 때 7차례 중수되고 왜구 방비의 기지로 사용되었다.
내성의 전체 넓이 200m2, 둘레 약 600m, 외성의 둘레 약 4km이다.
임진왜란 때는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란3대첩(壬亂三大捷) 중의 하나가 벌어진 곳이며,
1593년 6월 왜군의 재침시에는 군관민 6만이 최후까지 항쟁, 장렬한 최후를 마쳤으며,
이 때 논개(論介)는 적장을 안고 남강(南江)에 투신하였다.
기록에 보면 1605년(선조 38) 병사(兵使) 이수일(李守一)이 진(鎭)을 성내로 옮기고
성이 너무 넓어 수비가 곤란하다 하여 내성을 구축하게 되었는데,
성은 자연 촉석루를 중심한 현 진주공원 일대의 외성과 현재의 성내동(城內洞) 주변 내성의 둘로 나눠지게 되었다.
그 뒤 병사 김태허(金太虛)가 1607년 포루(砲樓) 12개를 증축하였고,
18년(광해군 10) 병사 남이흥(南以興)이 성 수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진주성은 대략 이 때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진주성의 성곽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3곳에 루각이 있는데 북장대, 서장대, 남장대(촉석루)가 그것이다.
문은 북문과 서문, 그리고 정문인 촉석문이 있다.
진주성의 정문인 촉석문
북문
북장대
서장대
남장대라고 불렀던 촉석루
촉석루의 설명도 백과사전을 참고한다.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8호. 정면 5칸, 측면 4칸. 고려 말의 진주성(晉州城)을 지키던 주장(主將)의 지휘소이다.
1365년(공민왕 14)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왜적이 침입하자 총지휘는 물론 남쪽 지휘대로 사용하였으므로 남장대(南將臺)라고도 하였다.
촉석루에 관한 기록을 보면
<진양지(晉陽誌)>에 고려 때 김중선(金仲先) 등이 진주성 수축시 신축하였다고 하였으며,
<동국여지승람>에는 김주(金湊)가 영남루(嶺南樓)를 중건할 때 촉석루를 본보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누기(樓記)에는 조선 초 목사 권충(權衷)과 판관 박시결(朴時潔)이 중건하고 하륜(河崙)이 누기를 지었다고 되어 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의기 논개가 낙화(落花), 순국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의 건물은 1973년에 재건된 팔작지붕의 와가(瓦家)이다.
성곽이 진주성 전체를 돌아서 싸였고,
옛날에 사용하였던 총통의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돌로 쌓은 성곽
성곽에 배치한 총통들
의기사, 논개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얼마 전에 영정이 수난을 당하였는데 다시 제자리에 모셔져 있다.
논개 영정
촉석루에서 돌계단을 따라 강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그리로 내려가면 강변에너른바위와 바로 곁에 사람 10여 명이 설 수 있는 바위가 떨어져서 강에 있다.
바로 의암이다.
의암에 대한 어느 분의 글을 소개한다.(les7198님의 글)
진주성 촉석루 암벽아래 남강 물속에 있는 바위로서 임진 왜란 전에는 위험한 바위라하여 위암(危巖)이라고 불리웠으며
논개가 이 바위에서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후 의리를 세운 바위라하여 의암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바위는 편평한 윗면의 크기가 가로3.65m, 세로 3.3m로 강물위에 솟아 있는데
오랜 시일을 두고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움직여 암벽쪽으로 다가섰다가,
때로는 강속으로 들어가서 암벽에서 건너 뛰기가 힘들 정도로 떨어지는 까닭에 그 뿌리는 어디에 닿았는지 알 길이 없다고 전해옵니다.
예로부터 진주시민들 사이에는 이 바위가 암벽에 와 닿으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바위 서면에는 인조7년(1629)에 원성(原城) 정대륭(鄭大隆)이 논개의 충절을 기리어 전자(篆字)로 의암(義巖)이란 글자를 새겼고,
남면에는 조은(釣隱) 한몽삼(韓夢參)이 해자(楷字)로 의암(義巖)이라고 새겼답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의암은 그냥 남강물에 씻기면서 말없이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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