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층석탑 뒤에 고풍스런 누각이 보입니다.
팔영루입니다.
이 곳은 우리나라 불교 음악의 창시자인 진감선사(774년-850년)가 중국에서 불교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 민족에 맞는 불교음악(梵唄)을 만든 불교 음악의 발상지이며
훌륭한 범패 명인들을 배출한 교육장이라고 합니다.
진감선사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써 어산(魚山)범패를 작곡했다고 해서 팔영루라고 한답니다.
신라 문성왕 2년(840년) 진감선사가 창건하였고
조선 인조19년(1641년) 벽암 스님이 중수한 후 1978년 고산스님이 완전히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팔영루를 지나니 마당 가운데에 비석이 있습니다.
국보인 진감국사 탑비입니다.
이 비는 신라 정강왕이 신라말의 고승 진감선사 혜소(774년-850년)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던 옥천사(玉泉寺)를 쌍계사(雙磎寺)로 명명하고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857-?)이 비문을 짓고 환영스님이 각자하여 887년에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대사의 속성은 최씨이고, 시호는 진감선사입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애장왕(哀莊王)5년(804년) 불도를 닦으러 당나라에 들어가
신감대사 (마조도일의 80대 제자로 남종선의 선사)밑에서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후 숭산소림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다시 종남산에 들어가 3년간 더 도를 닦았다고 합니다.
흥덕왕 5년(830년)에 귀국하여 상주(尙州) 모악산 장백산(長栢山)에서 선을 가르쳤고
다시 지리산 화개곡에 들어가 옥천사를 짓고 여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대사는 범패에 능하여 그 맑은 소리로써 대중을 널리 교화하였습니다.
비문의 자경은 2.3cm의 해서입니다.
이 탑비는 귀부와 이수 및 비신을 완전히 갖추고 있으며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귀부의 등에는 간결하게 귀갑문이 조각되었으며 귀두는 용머리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귀갑의 중앙에는 방형의 비좌가 마련되어 비신을 받게 되었는데 네면에 운문(雲紋)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진감국사 탑비를 가운데에 두거 양쪽으로 적묵당과 설선당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적묵당은 참선하는 스님 중 초심자가 수행하던 곳으로
그 구조로는 정면5칸, 측면3칸의 맞배집 목조와가(木造瓦家)입니다.
대웅전 앞의 뜰에서 동쪽에 위치한 설선당은 맞배집 형태로
스님들에게 불경을 강의하는 곳으로 중요한 교육장이라 합니다.
다시 계단을 오릅니다.
계단 위로 대웅전이 보입니다.
이 대웅전은 진감선사가 신라 문성왕 2년(840년) 초창한 이래
몇번의 중수를 거쳤다고 합니다.
대웅전에는 세분의 부처님이 계신데 중앙이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이고 좌측이 아미타불, 우측이 약사여래불이라 합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 기와집으로
막돌 허튼층 쌓기의 기단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민흘림 기둥을 세웠습니다.
공포는 외 3출목 내 3출목으로 기둥 위는 물론 기둥 사이 평방 위에도 짜올린 다포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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